예루살렘의 아히이만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저서. 그녀가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 혹은 관련 자료를 입수하여 그것에 대한 내용과 감상을 기술하였다. 이 책의 저술이 원래 좀 산만한지, 아니면 번역이 산만한지, 아니면 내가 산만하게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우선 아이히만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지 않았다. 그가 정체를 감추고 실종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뉘른베르크에서 피고인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 범죄, 인류에 대한 범죄 정도는 아니다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종전 후 정체를 감추고 숨어있다가 아르헨티나로 밀입국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다가 모사드에게 납치되어서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기로 하였다.

아렌트는 재판 과정에서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히만은 유죄라고 주장한다. 그녀가 아이히만이 유죄라고 하는 이유는 아이히만이 유대인에 대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죄, 하나님에 대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로 아이히만의 죄를 설명한다.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왜 나치는 유대인의 법적인 자격을 박탈하는 과정을 도입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것처럼 보인다. 당시 분위기가 그렇게 광기에 휩싸였다면 그냥 유대인을 모두 다 없애라고 하는 선동을 하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이유가 궁금하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의하면 사람은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수동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일을 지시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절차들을 효과적으로 분할하여 각각의 사람들에게 분배하면 된다. 유대인에게 독일 국적으르 박탈하는 업무,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업무, 유대인을 모으는 업무, 유대인을 이동시키는 업무, 그리고 유대인을 최종 해결책에 따라 처리하는 업무 등으로 말이다.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하면 사람들의 양심에 따른 부담이 적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언어규칙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게 무엇인가 하면 반제 회의에서 결정된 최종 해결책이라는 두리 뭉실한 표현이다. 일종의 암호화 같은 것이다. 유태인 집단 살해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을 이용하는 것보다 최종 해결책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면 관련된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최종 해결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대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들은 특히 소위말하는 지도층 유대인이었다. 이러한 자발적 참여자에 대한 심문이 재판 과정에서 빠졌다는 것을 아렌트는 아쉬워했다. 자발적 참여자에 해당하는 증인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이 재판이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치 치하에서 양심에 따르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당시 나치 휘하에서 덴마크는 온 국민이 똘똘뭉쳐 나치에 저항했다. 유대인을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을 유대인들이 지불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덴마크 부유층들이 그 비용을 지원해 주었다. 중립국이었던 스웨덴도 상당히 유대인들을 도와주웠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최종 해결책과 관련된 업무가 싫을 경우 보직 변경을 요청한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이 경우 진급에 영향은 받을지 몰라도 감옥에 가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마지막의 다음 인용구는 요약에 넣을지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넣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비의 하나님 앞에서 무행위와 침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민족에 의해 유대인에게 저질러진 불법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공유한다는 것을 확언한다.

독일복음주의교회 전후 성명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