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너 교육의 과정

교육과 관련된 책이 보이길래 퇴근길 열차 안에서 읽어 보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의도로 쓴 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저자는 급변하는 현대에 있어서 많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서 어떤 교육 정책을 세워야 하는 가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우선 공부 잘 하는 아이도 있고, 공부 못 하는 아이가 있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라면 학교라는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것을 가르치기에는 교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교사가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의 끝 부분을 읽을 때까지 와닿는 부분은 없었다. 그 말은 마지막 부분에는 좀 와닿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직의 이탈율이 높은 경우에는 비교적 훈련을 잘 받는 교사들조차도 자기의 과목을 가르치는 동안에 그 과목을 배울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다. 가르치는 것은 더 없이 좋은 학습 방법인 것이다. 이 점을 잘 말해주는 것으로 대학의 어느 유명한 물리과 교수의 이야기가 있다. 이 교수는 대학의 상급학년에게 양자론을 가르친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한 번 설명하고 교실을 둘러본즉, 모두 눈을 멀거니 뜨고 앉아 있었다. 이해를 못한 것이 분명하다. 또 한 번 설명했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 번째 설명을 했는데 그 때야 <내가> 이해할 수 있었다.”

191p

그리고 내 견해와 내 관점에 비추어 보면, 이 회의 (Woods Hole Conference가 다시 열린다면)의 문제점은 학습의 주도관과 자신감을 학습자에게 되돌려 주는 문제, 다시 학습하고 싶어지도록 학습자의 의욕을 자극하는 문제에 관계될 것이다.

216p

군가가 틀림없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게 매긴다 말인가?” 여기에 대하여 이렇게 반문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교수 상호간 또는 대학원 학생들과 공동 논문을 쓰는 저명한 동료 교수들의 성적은 도대체 어떻게 매긴단 말인가?” 이 반문이 어찌하여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가는 이 논문 전체의 아이디어에 함축되어 있다. 그 대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학생들의 성적을 매길 방법은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동료 교수들의 성적을 매길 수 없는 것과 같다.

22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