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수상작.
나무위키에서는 동시기 최고의 전쟁 영화인 지옥의 묵시록이 작품상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아카데미의 보수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둘 다 보았을 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는 지금부터 40년도 더 전에 이혼 가정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억압적인 남편(테드)을 두고 있는 조안나는 아들(빌리)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갑작스럽게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테드는 정말 엄청난 노력끝에 빌리와 사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조안나가 집을 나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무렵, 테드는 조안나의 흔적과 물품을 정리하여 창고에 보관한다. 하지만, 빌리가 엄마의 사진 하나를 옷장 속에 보관해둔 것을 발견한다. 그 사진을 보던 테드는 그 사진 뿐 아니라 조안나의 흔적을 빌리의 방에 그대로 보전한다.
테드의 잘못은 아니지만, 정글짐에서 빌리가 떨어져서 눈 주위가 찢어서 10바늘 정도 꿰메는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테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실수한 끝에 회사로부터 해고 당한다.
엄마가 떠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던 빌리는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조안나로부터 양육권을 되찾겠다는 연락을 받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에 나선다. 부성보다는 모성을, 그리고 아내보다 조금 적은 연봉을 받는 회사의 근무등의 조건이 고려되어 테드는 패소하고 빌리는 조안나가 양육권을 가지게 된다.
빌리가 테드는 떠나는 날. 그날 아침도 토스트이다. 조안나가 떠난 다음 날의 토스트와는 달리 테드와 빌리는 익숙하게 하나씩 하나씩 요리를 한다. 그리고 빌리는 아빠와 떠나는 수간까지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리고 약속한 시각. 조안나가 테드에게 1층에서 단 둘이 만나자고 전화를 한다.
조안나는 자신이 양육권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 빌리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테드로부터 빌리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테드는 조안나에게 자기는 1층에서 기다릴테니 빌리와 단 둘이 만나서 이야기 해라고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의 결말을 몇 가지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송의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다. 조안나가 빌리를 데려가서 키우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조안나는 빌리의 방 벽지를 준비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직 준비가 부족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다. 이 상황에서 빌리가 정말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항소하는 것이다. 테드의 변호사는 이 경우 빌리를 재판장에 증인으로 세워야 함을 말한다. 테드는 이 옵션을 전혀 선택할 생각이 없다.
마지막은 재결합이다. 부부의 오랜 친구와 같은 마거릿이 다시 남편과 만나기로 했다는 영화 끝부분의 이야기도 있기도 하고, 테드가 점점 변해가는 과정이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다. 다만, 소송 과정에서 서로를 할퀸 상처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새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면 우선 빌리는 테드와 함께 살며, 조안나가 특별한 제한 없이 방문하거나 한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한 후 다시 같이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여운을 남겼다는 것이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부성애를 좀 강조하는 그 정도 영화일 수 밖에 없다. 부성애를 좀 강조했다고 해서 지옥의 묵시록을 제치고 감독상을 받아야 할까? 부성애가 왜 강조되어야만 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조안나는 왜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안나는 본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안나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부분은 테드가 혼자서 빌리를 키우는 과정에서 배워야만 했던 그런 요소가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